臨済종 대덕사파의 대본산으로 용보산이라고 불린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인 정와 4년(1315)에 반주 호구인 아카마츠 엔신의 기부에 의해 대등국사 종봉묘초가 창립하였다. 후에 화원 천황과 고다이고 천황의 두터운 귀의로 남북 양조의 칙원사가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응仁의 난으로 황폐해졌으나, 이큐 스님이 복구하였다. 
도산 시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장례를 치르고, 노부나가의 보제를 위해 총견원을 건립하고 절지분을 기부하여, 이를 계기로 전쟁 시대의 무사들이 탑추를 세우고 번창하게 되었다.
닌자이종 대덕사파의 대본산으로 용보산이라고 불린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인 정화 4년(1315)에 반슈의 수호인 아카마츠 엔신의 기부로 대등국사 종봉묘초가 창립하였다. 이후 하나조노 천황과 고다이고 천황의 두터운 귀의로 남북 양조의 칙원사가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응닌의 난으로 황폐해졌으나, 일큐 스님이 복구하였다.  
모모야마 시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장례를 치르고, 노부나가의 보제를 기리기 위해 총견원을 세우고, 사찰 영지를 기부하였다. 이를 계기로 전쟁 시대 무장들의 탑두 건립이 잇따르며 극에 달하는 번영을 누렸다.
림세이종 대덕사파의 대본산으로 용보산이라고 불린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인 정와 4년(1315)에 반주(播州)의 수호인 아카마츠 엔신의 기증으로 대등국사 종봉묘초가 창건하였다. 이후 꽃정 천황과 고다이고 천황의 두터운 귀의를 받아 남북 조정의 조각엽사로 자리 잡았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응닌의 전란으로 황폐해졌으나, 일휴 스님이 복원하였다. 
모모야마 시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장례를 주관하고, 노부나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총견원을 세우며寺領을 기증하였다. 이를 계기로 전국 무장들의 탑주 설립이 잇따라 번성하였다.
임제종 대덕사파의 대본산으로 용보산이라고 부른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인 쇼와 4년(1315)에 방주(播州)의 수호자 아카마츠 엔신의 기증으로 대등국사 종봉묘초가 창립하였다. 후에는 하나조노 천황과 고다이고 천황의 두터운 귀의(歸依)를 받아 남북 양조의 칙원사가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응仁의 난으로 황폐해졌으나, 일휴 스님이 재건하였다. 
도요마사 시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장례를 치르고, 노부나가의 보제를 위해 총견원을 세운 후 사유지를 기증하였다. 이 계기로 전국의 무장들이 탑두(塔頭)를 세우는 일이 잇따르며 극도로 번창하였다.
2024년 9월 7일

린제이 종 대덕사파의 대본산으로 용보산이라고 불린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인 정와 4년(1315)에播州의 수호자 아카마츠 엔신의 기부로 대등 국사 종봉 묘초가 개창하였다. 이후 하나조노 천황과 고다이고 천황의 두터운 귀의로 남북 양조의 칙원사가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오닌의 난으로 황폐해졌지만, 이큐 스님이 복구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다 신사와 함께 오다 노부나가의 장례를 치르면서 노부나가의 법안을 위해 총견원을 세우고 사찰 재산을 기부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 무장들의 탑당 건립이 잇따라 일어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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